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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대구.경북 2018.10.12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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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엔젤이다 2. 대호약품 김재홍 대표

드러나지 않지만 언제나 함께하는 언성엔젤(unsung angel) - 김재홍 엔젤

강정영 기자l승인2018.10.12l수정2018.10.14 16:47


▲ 대구FC엔젤클럽 김재홍 엔젤 (대호약품 대표)

“인생의 항로에서 풍랑을 만나 어두운 그림자처럼 헤맬 때 나도 알지 못한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준 많은 분들의 신뢰와 믿음은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새로운 시작을 꿈꾸었고 살아가는 기운을 얻었습니다. 지금의 저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신 많은 분들과 직원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덕분입니다”

대호약품 홈페이지에는 여느 홈페이지처럼 CEO인사말 같은 건 없다. 대신 <덕분입니다>라는 코너가 있고 ‘ IOU캠페인, 지금 당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합시다’로 시작하는 글이 있다. 거기 직책도 없이 ‘김재홍’ 이라는 이름 옆에, 위와 같은 글이 적혀있다. 물론 임직원들로 보이는 다른 이의 글도 이어진다.

대호약품 대표 김재홍 엔젤. 그는 스포츠의 '언성 히어로'처럼 실제로 드러나지 않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 옆에 함께 하는 ‘언성 엔젤’이다. 그는 2015년 엔젤원년 창단 멤버이며, 엔젤이 10명도 채 되지 않을 때부터 엔젤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엔젤을 사랑하며 자부심도 크다.

엔젤부회장이지만 운동장에서 그의 얼굴을 자주 보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는 엔젤이 가는 어디에나 있다. 엔젤 비전선포식, 천사데이와 같은 큰 행사 때는 물론,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협찬품이 먼저 와 있고, 명절날 수고하는 스텝들 선물 챙기기도 잊지 않는다. 김미숙 엔젤이 맛있게 싸오는 천사표 엔젤김밥에도 김재홍 엔젤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함께한다.

▲ 대호악품 홈페이지 IOU캠페인(사진제공=대호약품)

그의 홈페이지에 적어두었듯이 그는 언제나 사람이 먼저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 언제나 최우선이다. 그의 인생에서 언제나 기회는 사람을 따라왔다고 했다.

대구광역시 하키협회 회장, 대구FC엔젤클럽 부회장, 사단법인 한국의약품 유통협회 부회장 및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 사단법인 한국의약품 유통협회 대구·경북지회 자문위원, 재단법인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 재단법인 대구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 사단법인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발(DIMF) 이사, 사단법인 대구세계합창축제조직위원회(DICF) 이사, 달성고등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재단법인 달성고등학교 총동창회 장학회 상임이사 등 의약품에서 스포츠, 문화계까지 폭넓은 그의 후원활동도 다 사람 때문에 시작됐다.

▲ 지난 겨울, 엔젤클럽 방문단이 중국 쿤민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대구FC 선수들을 격려했다.(왼쪽부터 안상영이사, 엄태건상임부회장,김재홍부회장,이호경회장,대구FC조광래사장,정영준이사, 강병규부상임부회장,심인철이사)사진제공=대구FC엔젤클럽

친구들과 함께 ‘축구사랑을 통한 대구사랑’의 뜻에 함께 하기 위해 엔젤을 시작했고, 하키협회장은 달성고등학교 시절 하키선수였던 친구 구본일 전무이사가 하키협회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그를 도우기 위해 시작됐다.

사업도 그랬다. 김재홍엔젤은 1988년부터 1998년까지 한일약품공업주식회사에서 대구경북지점장까지 올랐다. IMF때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사람이 회사를 떠났고, 정리해고를 하였지만 자신을 믿어주고 이끌어준 상사와의 인연으로 끝까지 회사에 남아 별별고생을 다했다. 1998년 대호약품을 시작한 것도 그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대호약품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었을 무렵, 평소 존경하던 선배가 운영하던 화장품 개발회사가 어려움에 처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고, 연구와 개발을 거듭한 결과 지금은 중국, 미국 등 전 세계에 수출하는 기업이 되었다.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지키는 데 중심을 두고 살았으나 언제나 성공은 아니었다. 도와주는 마음을 이용해 배신하는 사람도 있었고, 돈과 함께 사람을 잃은 경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이 먼저인 삶의 철학에는 변함이 없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어머니의 교훈은 지금도 그의 삶의 기둥이 되고 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힘들어할 때, 어머니의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는 “아들아~너를 힘들게 하거나 배신하는 자가 있거든 원수로 생각하지 말고, 복수하려고 하지도 말고 인생의 큰 가르침을 준 스승으로 생각하여라”고 말씀하셨다. 마치 모든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한 어머니의 목소리는 그날 밤 그를 편안히 잠들게 했고, 지금도 힘든 순간이면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린다.

인터뷰를 하면서, 설명은 안하지만 ‘직원들에 대한 신뢰도 이와 다르지 않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겼다.

중국 근대사를 장식한 대상인 호설암은 이렇게 말했다. “믿음을 가지는 것만큼 인재를 보호하는 수단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신임을 받으면 책임감과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무장시킨다. 특히 부하에 대한 상사의 신뢰는 값을 따질 수 없는 포상이다”

그의 인터뷰를 위해 삼고초려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결국 인터뷰는 메모 한 장 없이 편안한 토크로 진행했다. 그렇게 참 마음은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난다.

대구 강정영 기자 newswayd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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